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한반도위기관리TF
1차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4.02.02. 뉴시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4·10 총선에 적용할 비례대표 선거제도 당론 결정 권한을 이재명 대표에 일임하기로 했다.
당 안팎에서 비례대표 선거제를 전당원 투표로 결정하려는 움직임을 두고 정치적 책임을 피하려 한다는 비판이 쇄도하자 이 대표에 결정권을 넘긴 것이다.
이에 이 대표는 권역별 병립형 비례대표제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놓고 득실을 고심할 것으로 보인다.
권역별 병립형 비례제는 거대 양당인 민주당과 국민의힘에 유리한 반면 정의당과 제3지대 신당에겐 불리하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강선우 대변인은 2일 최고위원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오늘 최고위에서는 선거제 관련 허심탄회한 소통이 있었다"며 "당의 입장을 정하는 권한을 이 대표에게 위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최고위 결정으로 선거제와 관련해 이 대표에게 포괄적 권한이 위임됐다"면서 "그 다음 절차에 대해서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강 대변인은 '이 대표가 결정하면 전당원 투표는 하지 않느냐'는 물음에도 "이 대표에게 포괄적 권한을 위임했다"고만 짧게 답했다. 이 대표가 결단을 내린다고 하더라도 전당원 투표 등의 방식을 통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와 관련 권혁기 당대표 정무기획실장은 "최고위원의 권한을 위임한 거지 최고위원의 결정이 엔딩(ending·끝)은 아니지 않느냐"며 "당무위원회도 있고 중앙위원회도 있고 전당원 투표도 있다. 대표가 어떤 프로세스 밟을 거냐 고민할 것이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관계자의 설명을 종합하면 권한을 위임받은 이 대표가 직접 선거제 관련 입장을 밝힐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이 과정에서 의원총회나 전당원 투표 등 총의를 모으는 절차를 활용할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있다.
민주당 안에서는 현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과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이 첨예하게 맞선 상태다. 격론이 이어지자 전당원 투표에 부쳐야 한다고 주장이 나왔고 실제 실무 작업에도 착수했다.
그러나 당 안팎에서 선거제를 전당원 투표로 결정하는 것은 당원에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란 지적이 제기됐다. 고민정 최고위원은 이날 회의에서 "전당원 투표에 기대어 결정하는 건 책임을 전가하는 것으로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공개 비판을 하기도 했다.
이에 지도부는 이날 선거제 당론과 전당원 투표 여부 등을 정하기 위한 논의를 진행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이 대표는 지난해 11월 "멋지게 지면 무슨 소용이냐"며 병립형 회귀를 시사한 뒤 내홍이 일자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아왔다.
그러다 친명계 핵심인 정청래 최고위원이 "선거는 자선사업이 아니다"라며 실리를 내세우고, 임혁백 공천관리위원장이 소수 정당의 의석을 보장하는 권역별 병립형 비례대표제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하면서 당 지도부가 병립형 회귀를 위해 명분 쌓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다만 대선 공약인 선거제 개혁 및 비례대표제 강화를 파기하는 셈이어서 병립형으로 돌아갈 명분이 마땅치 않다는 부담이 있다. 더욱이 연동형을 유지해 정치개혁 약속을 지키고 비례연합정당 등을 통해 야권연대를 강화하는 것이 정권심판론을 키워 총선을 승리를 이끄는 길이라는 반론도 제기된다.
소속 의원 절반가량인 80명은 "병립형 퇴행은 윤석열 정부 심판 민심을 분열시키는 악수 중의 악수"라며 반발했고, 정의당 등 야권 성향의 소수정당과 시민사회도 병립형으로의 퇴행은 안 된다며 민주당에 약속을 지키라고 촉구했다.
당 관계자는 "사실상 현행 준연동형 대신 권역별 병립형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면서도 "두 가지 다 장단점이 있어 정무적으로 고심을 거듭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설 연휴 전에는 선거제 당론을 결정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장경태 최고위원은 기자들과 만나 이 대표의 결정 시점에 대해 "설 연휴는 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각에선 비례대표 선출 방식을 둘러싼 혼선이 정리되지 않은 데다 당원 투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결정이 더 늦어질 수 있단 관측도 나온다.